앞서 포스팅했던 백팩커하우스를 알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
무모할 정도로 아무런 준비 없이 출발했던 여행이 갑자기 풍성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만남때문이었다.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아무대책도 없이 그냥 무작정 시내로 들어가는 벤에 탑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콜벤 비슷한 것이었는데, 숙소를 정한 것도 아니고 일정을 잡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숙소 잡기 편한 곳으로 가자고 했던 거 같다. 그렇게 해서 도착했던 곳이, 당시에는 이름도 몰랐지만, 케이프타운에서 유명한 워터프론트였다.
케이프타운 워터프론트에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들이 펼쳐졌던... 유럽 여행을 해보지 못했던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워터프론트는 내가 꿈꾸던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사바나 초원과 굶주린 사자(끝내 코빼기도 못봤다 -.-)를 꿈꾸며 아프리카로 떠났던 내게 그런 광경은 충격이었다.
워터프론트를 돌다가 눈에 띄었던게 라이언헤드였고, 무작정 라이언헤드를 향해 걸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더 웃지 못할 일은 힘들게 오른 라이언헤드 정상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온 관광객들을 발견했을 때의 황당함이란... CF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 라이온헤드에서 씨티투어버스의 존재를 알게되었고, 운전사와 협상을 통해 당시 요금의 절반 수준에서 투어버스를 이용해서 케이프타운 시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시내로 들어오면서 머릿속에는 그 때까지 동경해 왔던 '희망봉(cape hope)'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일정도 없이 그냥 꿈꾸던 것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던 내가 투어버스에서 시내라고 내린 낯선 곳에서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었을 것이다.
희망봉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지도 못했는데 근처에서 택시를 대절해야 한다는 소릴들었다. 대체 어디서 택시를 대절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또 그 택시비는 얼마란 말인가? 참 당황스러웠다. 그냥 멍하게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때 길 건너편에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날 처음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듯 한 인상에 끌렸다.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걸까? 신호가 바뀌면서 난 길 건너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길을 건너지 않았다. 그냥 그자리에 계속 서있었다.
'Excuse me... May i have your a favor?' 내가 꺼낸 첫마디였다. 그녀는 흔쾌히 내 도움 요청을 받아들였다. 희망봉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전화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마침 옆에 있던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시도했는데... 전화를 걸 수 없었다. 계속 같은 자리에 서있는 그녀에게 난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전화를 하더니... 건너왔던 길을 다시 건너서 그 길을타고 쭉 올라가다 보면 택시 정류장을 만날 수 있을거라고 했다. 거기서 희망봉까지 요금을 흥정하라고 했다. 대충 얼마라고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생각으로는 꽤 비쌌던거 같다. 난 고맙다고 하고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곤... 그녀에게 왜 여기 서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길 건너편에 그녀의 친구가 차를 몰고 왔다. 그녀와 함께 길을 건넜다.
그녀는 친구에게 갔고 나는 가르쳐준 길을 가려고 했다. 그랬는데 그녀가 친구에게 뭐라고 하더니(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영어와 아프리칸스 두 언어를 모두 쓴다.), 나를 부른다. 타란다. 택시 정류소 까지 태워다 준다고... 이 얼마나 횡재인가? 아님... 두 여자에게 납치당하는 건가? 순간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탔다. 그녀의 친구는 영어를 잘 못했다. 둘이서는 아프리칸스로 대화했고, 나와는 영어로 대화했다. 둘은 정말 오랫만에 만났다고 했다. 만나서 뭐할꺼냐고 하니까... 그냥 식사하고 차마시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했다. 난 그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녀들에게 제안을 했다. '지금 나 택시 태워주러 가지말고, 내가 그 택시비에 해당하는 만큼 돈을 지불하겠으니, 나를 희망봉에 데려다주라 너희도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괜찮지 않느냐?'하는 정도로 물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안된다고 하더니, 친구와 상의 후에 그럼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나는 정말 기뻤다. 이게 왠 횡재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묻는다. '너, 돈은 있니?'하고... 좀 쫄았다. '아니 정말 호의를 베푸는 척 하면서 날 벗겨먹을라고?'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좀 있다. 근데, 아직 환전을 못했다.' 그랬더니 알았다며 환전부터 하자고 한다. 그리고는 중국인에게 환전하면 환율이 좋으니 그리고 가자고 하면서... 왠 건물 뒷골목으로 데려간다. 그 땐 정말 쫄았다. 정말 잘못 걸렸나보다하고... 그런데 왠걸, 찾아간 곳은 정말 중국인 암달러상이었다. 환전을 하고 보니 공항에서 택시타느라 조금 환전했던 환율보다 훨씬 좋았다. 환전을 하고 그녀는 잠시 그녀의 집에 들러야 한다고 했다. 나보고는 숙소를 정했는지 물어보았고 아직 못 정했다고 하니까 그럼 희망봉에 다녀와서 호텔을 정하자고 했다. 우선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가서 몇 가지 준비해 갖고 가자고 했다. 희망봉 들렸다가 오는길에 친구네 집에 들러서 뭘 전해주어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들르게 된 그녀의 집. 좋았다. 개인적으로 세일즈를 하고 있다는데 꽤 수완이 좋은 듯 했다. 그녀의 집에서 우연하게 본 사진 한 장. 그녀의 전 남편이란다. 그녀는 이혼녀였던 것이다. 당시도 꽤 미인이었지만, 결혼 전만 해도 훨씬 미인이었다. 혼자 살기에는 좀 크다싶은 집이었는데... 암튼 잘 꾸미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희망봉으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나는 케이프타운이 그냥 희망봉이려니 생각했는데, 희망봉은 케이프타운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임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거기까지 기꺼이 나를 데려다 주려고 했던 그녀들에게 무척 고마웠다. 그녀들은 희망봉까지 데려다주는데 돈은 되었고, 차에 기름이나 넣어 달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당시 우리나라 기름값으로 계산해서 만땅을 채워도 택시비보다는 쌌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는데... 왠걸... 이건 정말 거저였다. 남아공의 기름값은 당시 우리나라 기름값의 반절도 안됐고, 또 그녀들은 희망봉까지 다녀오는데 필요한 만큼만 기름을 넣었다. 정말 착한 그녀들... 희망봉 가는 길에 아름다운 포트에 들러서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난 기름값도 적게 들었겠다 그녀들에게 한 턱 쏘고 싶어서 젤로 비싼거 먹는게 어떻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들은 값싼 '피시앤칩스'면 되었다고 한다. 난 첨 먹어보는 '피시앤칩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녀들은 날 베껴 먹으려는 악녀들이 아니라 불쌍한 나를 위해 준비되었던 천사들이었던 것이다. 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들은 나를 위해 케이프타운 반도를 거의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덕분에 나는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국립공원까지를 훌륭한 가이드들과 함께 멋진 여행을 했던 것이다.
희망봉으로 가는 길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던 한 포트에서...
드라이브를 마치고 다시 케이프 타운에 돌아온 시간은 이미 해가 다 진 저녁시간이었다. 그녀는 내게 숙소는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고, 나는 또 엉뚱한 제안을 했다. 호텔비 만큼 사례 할테니까 그녀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 안되겠냐고... 그랬더니 웃으며 안된다고 했다. 자기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안된다고 했다. 참 그렇지... 언감생심 잠자리까지 신세 지려고 했더니 그건 아닌거 같았다. 그러면 적당한 호텔로 데려다 주라고 하자, 그녀는 또 묻는다. '너 돈 많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그녀는 저렴한 숙소가 있다고 했다. 돈많아서 호텔로 갈건지 아님 저렴한 숙소로 갈 건지를 묻는 거였다. 나야 저렴한 숙소가 있다면 안좋을리가 없으니, 저렴할 수록 나는 좋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알았다고 저렴한 숙소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또 어두운 길로 간다. 또 쫄았다. 차가 숙소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왠 철문이 열리고 차가 철문 안으로 들어선다(이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아공 치안이 조금 불안해서 숙소의 안전 장치였던 것이다). 그렇게 첫 발을 디디게 된 '백팩커하우스'였다. 그녀들이 안내한 백팩커하우스의 숙박비는 나를 엄청 놀라게 했고, 그녀들에게 백팩커하우스 바에서 음료 한 잔 다시 대접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거기서 우린 전화번호와 주소 등을 교환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게 정말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녀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아직까지 갖고는 있지만, 그게 아직도 유효할지는 미지수일 뿐더러, 나는 당시 여행 수첩을 뒤적이지 않으면 그녀들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남은 사진 한 장에 의존해서 그녀들, 아니 그녀를 추억할 뿐이다.
그녀와의 사진 한 장...
우연한 만남, 그 우연한 만남 뒤에 나는 계속해서 우연한 만남을 계속하게 된다. 나의 여행은 그런 우연한 만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난 아직도 여행 자체보다도 그런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여행을 꿈꾼다. 인생 살이와 무척 닮아있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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